‘나는 몰라요’ 가수 옥희, 신장암 투병 끝 별세… 마지막까지 무대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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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나는 몰라요’를 기억하시나요. 그 맑고 시원한 목소리의 주인공, 가수 옥희 씨가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2026년 6월 20일 오후, 옥희(본명 김광숙) 씨가 신장암 투병 끝에 향년 73세로 별세했습니다. 화려한 무대 위에서 늘 환하게 웃던 그가 남긴 발자취를, 오늘 이슈픽이 차분히 되짚어 보려 합니다.
“저희는 세계를 누비던 K팝의 원조였어요.”
— 2019년 KBS ‘아침마당’에서, 데뷔 시절을 회고하며
가수 옥희, 어떤 인물이었나
옥희 씨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3년, 피란지였던 부산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이 악극단에서 활동하던 ‘예인 집안’이었으니, 무대는 그에게 태어날 때부터 익숙한 공간이었던 셈이죠.
휴전 뒤 서울로 올라온 그는 배화여중 3학년 때, 명동에서 의상실을 하던 고모의 소개로 가수 현미 씨를 만나면서 연예계에 첫발을 들였습니다. 작은 인연 하나가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순간이었습니다.
💡 ‘미8군 쇼’가 뭔가요?
주한 미군 부대를 돌며 펼치던 위문 공연 무대예요. 1950~60년대엔 이 무대가 지금의 오디션 프로그램이자 해외 진출 통로 역할을 했습니다. 패티김, 윤복희 같은 스타들도 여기서 실력을 갈고닦았죠. 옥희 씨 역시 이 무대를 발판 삼아 가수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서울시스터즈’ — 한류보다 앞섰던 원조 걸그룹
1968년, 옥희 씨는 5인조 걸그룹 ‘서울시스터즈’의 리더로 데뷔합니다. 그리고 홍콩, 중동, 미국, 캐나다 등 세계 각지를 돌며 무대에 올랐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해외에서 먼저 이름을 알린 K팝 걸그룹이었던 셈이에요. BTS와 블랙핑크가 세계를 누비기 수십 년 전, 이미 한국 여성 가수들이 지구 반대편 무대에서 노래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지금 봐도 놀랍습니다. 옥희 씨 본인이 “K팝의 원조”라고 자부했던 이유이기도 하죠.
‘나는 몰라요’와 전성기
귀국 후 솔로로 전향한 옥희 씨는 1974년 데뷔곡 ‘나는 몰라요’로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이 곡으로 그는 MBC 10대 가수상까지 받으며 1970년대를 대표하는 여성 가수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후로도 히트곡이 줄을 이었습니다.
- 눈으로만 말해요
- 어디에 있을 것 같아
- 아 그날이
- 이웃사촌 — 지금도 많은 분들이 흥얼거리는 대표곡
- 두 손을 잡아요
맑으면서도 힘 있는 음색은 당시 가요계에서 단연 돋보였고, 한 시대의 분위기를 그대로 담아낸 목소리로 사랑받았습니다.
홍수환과의 인연, 그리고 마지막까지 함께
옥희 씨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바로 ‘4전 5기’ 신화의 복싱 세계 챔피언 홍수환 씨입니다.
두 사람은 1970년대 후반 교제해 1978년 딸을 얻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결별했습니다. 그런데 무려 16년 뒤인 1995년 재결합을 발표하며 다시 한 번 세간의 화제가 되었죠.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인연이었습니다. 이후 두 사람은 2000년 함께 음반을 내고 자선음악회 무대에도 나란히 올랐고,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습니다.
그리고 홍수환 씨는 옥희 씨가 투병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곁을 지키며 간호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빈소 역시 그가 지키고 있습니다.
투병 중에도 놓지 않은 무대
옥희 씨는 지난해(2025년) 신장암 진단을 받은 뒤에도 음악에 대한 의지를 꺾지 않았습니다. 2024년 신곡 ‘고마운 사랑’을 발표했고, 음악 동인 ‘예우회’ 음반에 실린 ‘인생 열차’가 그가 남긴 마지막 노래가 되었습니다.
특히 별세 불과 3개월 전인 2026년 3월, 그는 투병 중인 몸으로 KBS ‘가요무대’에 올라 ‘정열의 꽃’을 불렀습니다. 끝까지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었던 그의 마음이 느껴지는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 ‘호스피스 병동’이란?
완치가 어려운 환자가 남은 시간을 고통은 줄이고 존엄은 지키며 보낼 수 있도록 돕는 곳이에요. 무리한 치료보다 ‘편안함’에 초점을 맞춥니다. 옥희 씨는 경기도 수원의 한 호스피스 병동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습니다.
빈소 및 장례 정보
| 구분 | 내용 |
|---|---|
| 빈소 |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2호 |
| 발인 | 2026년 6월 24일 |
| 장지 | 함백산 추모공원 |
| 장례 형식 | 대한가수협회장 |
| 유족 | 남편 홍수환, 1남 1녀 |
💡 ‘대한가수협회장(葬)’이 뭔가요?
개인이나 가족이 치르는 가족장과 달리, 가수들의 단체인 대한가수협회가 주관해 치르는 장례예요. 고인이 가요계에 남긴 발자취를 동료 가수들이 함께 기리는, 일종의 ‘업계 예우’라고 보면 됩니다.
세계를 누비며 노래했고,
투병 중에도 무대를 놓지 않았던 사람.
그가 남긴 노래는 오래도록 우리 곁에 남을 것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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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연합뉴스·경향신문·한국일보·머니투데이·파이낸셜뉴스 등 언론 보도를 종합해 작성했습니다. 장례 일정 등 세부 정보는 변동될 수 있어 보도 및 공식 발표를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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